무려 9박 10일짜리 해외여행.
10년 차 직장인이라고 해도 연말에 큰 마음먹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장기 휴가를 와이프와 만난 지 10주년 기념여행이라고 질러버렸다. 21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12월 21일 오전까지만 근무하고 오후 반차를 써서 19시에 인천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 날 인천공항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려 출국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입국 수속을 밟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출국 두 시간 전엔 도착했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조금 빠듯하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탑승구로 가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와이프가 갑자기 말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면세 물품 수령 때문이었다.
약속된 게이트 출발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이번 여행만큼은 정말 여유를 즐겨보자 했지만 런닝맨이 우리 운명인가 보다 했다. 겨우 물품수령하고 거의 마지막으로 탑승 완료!
우리의 발리 비행일정은 다음과 같이 비행시간 9시 20분과 공항 대기시간 6시간을 합쳐 총 15시간 20분짜리 대장정이다.
1. 21시 15분 인천 출발
2. 00시 45분 베트남 하노이 공항 도착
3. 07시 05분 하노이 공항 출발
4. 11시 55분 인도네시아 덴파사르 공항 도착
9시간이라는 긴 비행을 위해 와이프가 비행기 표를 구할 때 비엣젯 항공이면 돈을 더 내고서라도 비상구 좌석에 앉아야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비상구좌석으로 업그레이드하는데 1인당 25만 동(원화 약 14000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옵션이 되었다. 물론 정말 비행 중 비상상황 발생 시 적극적으로 승무원을 도와 안내할 준비도 되어있었다.
새벽에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내려 대기좌석에서 비몽사몽 기절하듯 자고 또 좀비처럼 환승하다 보니 드디어 도착한 발리!
정말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발리로 여행 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큰 캐리어보다는 배낭을 메고 온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빨리 입국하고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의 행정처리에 익숙하다 보니 많은 인파가 몰린 오전에 특히 입국수속이 생각보다 많이 더디게 진행됐다. (왜 대한항공이 직항노선을 굳이 밤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하는지 알겠더라)
다른 블로그만 봐도 발리 입국 시 꼭 E비자(E-VOA)를 신청하라고 했는데 사실 먼저 출력해 온다고 해서 크게 일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급하는 것도 엄청 빠르게 발급해 주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은 놓치고 왔더라도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는데 세관신청은 꼭 사전에 하고 오는 걸 강력추천한다. 느린 공항 WiFi에 개인정보를 하나씩 넣어 QR코드를 발급하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애를 먹는 걸 보았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기나긴 입국수속이 끝나고 드디어 발리 입국 완료! 미리 클룩으로 호텔까지 픽업서비스를 예약해 둔 덕에 왓츠앱으로 기사님이 도착하면 클룩에 와서 본인을 찾으라고 하셨다.
클룩은 입국장을 쭉 걸어 나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기사님도 바로 우리를 알아보고 픽업해서 호텔에 데려다주셨다.
발리의 첫 이미지는 더웠다. 그리고 더웠다. 가뜩이나 우리가 한국에서 출국할 때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한파를 겪다가 내리자마자 영상 30도가 넘는 한국 7월 중순의 온도를 겪으니 몸이 온도에 적응이 안 돼서 처음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차선과 오토바이가 차보다 많은 도로 그리고 시원한 것 같지만 시원하지 않은 에어컨 바람을 겪으며 3년 만에 해외여행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50분 정도 달려 스미냑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의 첫 베이스캠프 : 카유마스 스미냑 리조트 (Kayumas Seminyak Resort)
첫 숙소를 스미냑으로 잡은 이유는 발리를 아예 하나도 몰라 로컬동네까지 가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우붓 같은 곳에서 휴양을 바로 하고 싶지도 않아서 밸런스 있게 발리를 적응을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스미냑을 발리의 청담동이라고 한다는데 거리부터 호텔까지 정돈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직원들도 유창한 영어실력에 친절함은 더할 나위 없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체크인을 마치고 15시간의 긴 피로를 녹여주는 정말 예쁜 디자인의 객실이 우리를 반겼다. 심지어 에어컨도 미리 시원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들어가서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샤워를 하고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고 늦은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가볍게 하기로 했다.
발리에서의 첫 끼 : WARUNG DEDALU
다행히 숙소 근처에 구글 평점이 괜찮은 발리 현지식이 있다고 해서 바로 걸어서 왔다. 문제는 숙소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땀이 미친 듯이 쏟아질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이 가게는 냉방이 되는 곳은 아니어서 조금 더웠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메뉴를 시켰다.
맛있다! 발리에서의 첫 느낌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모든 메뉴가 다 입맛에 맞았고, 특히 미친 가성비를 처음 느꼈다. 음료수까지 다 합쳐서 저렇게 먹었는데 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우리 발리 여행 정말 잘 온 것 같다를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식당이었다.
다 먹고 돌아다니려 했는데 정말 너무 더워서 다시 숙소로 복귀해서 강제로 1시간 정도 쉬고 스미냑스퀘어라는 번화가를 가보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스미냑 스퀘어를 가는 법을 물어봤는데 셔틀서비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후 2시까지만 운행한다고(우린 4시쯤 여쭤봄)해서 아쉬워하고 있는 찰나에 직원분께서 오늘만 특별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스미냑스퀘어에서 발리의 러시아워를 경험하다
호텔에서 스미냑스퀘어까지는 고작 1.5km 남짓. 구글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인데 스미냑에서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정말 극단적으로 심각할 수준의 교통 정체가 발생했다. 오토바이가 계속 지나가면서 차들은 꿈쩍도 못하게 하는가 하면 삼거리에서 신호등이 없어서 모든 차량이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하면서 걸어서 가도 20분 거리를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도착했다. 오히려 직원에게 우리가 미안할 정도였다.
스미냑 스퀘어는 사실 쇼핑을 즐겨하지 않는 우리에겐 그냥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쇼핑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ATM기가 있어 현금을 좀 뽑고는 별다르게 할 것도 없어서 근처에서 커피나 한잔 하기로 했다.
Junction House라는 가게에 브런치와 커피를 판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고, 커피만 마시러 오는 우리를 직원분들이 신기하게 봐서 우리도 커피를 마시다시피 먹고 금방 나왔다. 커피맛은 쏘쏘 한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이게 적도의 해 질 녘이다! 스미냑 선셋
6시쯤 되니 해가 슬슬 지려고 해서 근처 해변가에 가서 가볍게 해 질 녘이나 구경하기로 했는데, 이 해 질 녘을 안 봤다면 정말 정말 후회할 뻔했다. 물론 다음날 포테이토헤드라는 비치클럽에 갈 계획이었지만 첫날 날씨도 너무 더웠고 발리에 적응도 아직 덜된 상태라 가볍게 구경만 하려고 했던 해변에 도착하는 순간 정말 적도라서 느낄 수 있는 거대한 태양이 지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바다는 시시각각 색깔이 바뀌어 정말 넋을 놓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문득 '아. 나 이거 보려고 발리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여행 온 첫날부터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아무 생각 없이 바다만 바라보다가 스미냑 스퀘어에서 전단지로 받은 마사지 샵이 떠올라서 급하게 왓츠앱으로 연락을 했더니 자리가 남아 있었다. 몸도 힘든데 바로 마사지 고우!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마사지. 부끄럽지만 시원했다.
동남아 여행은 처음이고 사실 한국에서 마사지를 받기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가끔 마사지 기계를 통해서만 받아봤는데 발리는 1일 1 마사지를 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저렴한 편이라고 해서 이번에야말로 마사지 경험을 해보리라 다짐했다. 왓츠앱을 통해 마사지 종류와 시간을 정하고 약속된 시간에 도착했다.
Essential SPA는 스미냑 스퀘어 2층에 위치해 있는데, 친절하고 편안하게 마사지를 해주신다. 다만 내가 이런 마사지가 처음이다 보니 옷을 다 벗고 실오라기 같은 속옷 하나만 입고 있는 게 처음엔 많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ㅎㅎ 하지만 마사지를 다 받고 나니 왜 1일 1 마사지를 해야 하는지 알 정도로 너무 개운하고 좋았다.
사실 저녁에도 크게 시원한 날씨는 아니어서 편의점에서 빈 땅맥주와 피자를 파는 가게가 있으면 테이크아웃을 해서 숙소에서 먹을까 하다가 치우기도 애매하고 또 숙소까지 가는데 15분 가까이 걸어가야 해서 근처 피자집에서 그냥 먹고 가기로 했다.
발리의 이탈리안 푸드투어 시작 : Ultimo Pizza
가격이 꽤 비싼 축에 속하지만 예쁜 조명과 인테리어 덕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었다. 맛은 이탈리아 음식답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정도의 맛이었고, 천장이 뚫려있는 구조 덕에 많은 가족단위로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긴 비행시간과 급격하게 달라진 날씨 때문에 고생했던 긴 하루를 정리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무료 요가 수업이 아침에 있다고 해서 늦지 않게 숙소에 복귀했다.
길~~ 고 길었던 첫날 일정은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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